■ 보리심 기본적으로 지혜 원력 자비가 있다 보리심을 설명하는 대승정종분제3 에 다 들어 있다.
일체중생 태란습화 ㅡ 광대원력 일체중생을 가장 높은 열반으로 인도하겠다 ㅡ 자비 이런 중생을 다 제도를 했어도 제도 받은 중생이 하나도 없다. 아인중수사상을 일으키면 보살이 아니다 이 두 항목 ㅡ 지혜
원력 자비 지혜 ㅡ 보리심 보리는 결과의 지혜 ㅡ 불지 ㅡ 과지 보살지 ㅡ 아직 닦아가는 인지 불지 ㅡ 이렇게 지혜 자비 원력이 다 갖추어진 것 ㅡ 보리
발심을 할 때는 ㅡ 중생을 제도하려고 하고, 천상에 보내고 복 받고 가 아니라, 최고의 열반으로 인도해주려고 해라. 열반으로 다 인도했어도 내 마음속에서는 인도받은 중생이 하나도 없다. ㅡ 지혜
비설소설분제21 끝에 수보리야 중생중생자는 여래설 비중생 시명중생 지혜로 보면 중생이 중생이 아닌것이다. 지혜에 있는 보살에게는 자비원력으로 중생을 다 제도했어도 제도받은 중생은 하나도 없는것이다.
만약 '중생을 제도했다' 라고 하면 제도받은 중생, 제도받지 못한 중생, 내 가 있고 / 아인중수사상 이 그대로 있는 것이다. 중생중생자 여래설 비중생 시명중생 ㅡ 지혜 중생이다중생이다 라고 하는것은 중생이 아니고 이름이 중생이다.
반야심경 ㅡ 오온이 개공, 오온이 중생 오온이 다 공함을 보면 관자재보살 오온이 다 공함을 보지 못하면 사리자 이다. 오온이 다 공함을 본 관자재보살이 오온이 공함을 보지 못한 사리자에게 설법하는 것이 반야심경 ㅡ 사리자야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색수상행식 이 중생인데 색수상행식이 공이고 공은 뭐냐, 시제법공상은 수상행식의 제법이 공한 내용은, 육불공상 이다. 공은 육불공상이다 ㅡ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아인중수사상 육불공상 이게 반야바라밀이다. 일체중생이 중생이 아니고 공이다. 공은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이다.
발심보살은 중생을 아무리 많이 제도 했어도 제도한 중생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본래 불생불멸불구부정부증불감 이니까 보살은 여기에 머무는 것이다. 일체중생을 다 제도하는데 머물고, 제도했어도 한 중생도 제도 받은이가 없는데 머무는 것이다. 이것이 발심이다. 중생은 아집법집아인중수사상에 머문다. 여기서 발심하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금강경 제일 마지막 일체유의법 여몽환포령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일체유의법이 오온이다. 오온은 (조금 확대되면) 십이처이다. 안이비설신의색성향미촉법 이걸 더 확대시키면 18계 다. 육군육식육경 5온 12처 18계 ㅡ 온처계 ㅡ 유의법 꿈은 과거이고..... 꿈이고 뭐고 다 줄여서 보면 온처계 이게 세간법이고 유의법이다. 일체유의법이 = 5온12처18계 = 몽환포령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 이다. = 여로역여전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다) 이게 불생불멸이다.
그림자가 아무리 일어나도 생긴게 아니고 그림자가 아무리 사라져도 사라진게 아니다. ㅡ 이런식으로 봐라. 이것이 반야바라밀 이다. 예) 그림자를 없앴는데 없앰을 받은게 없다. 꿈을 없앤게 없앰을 받은게 없다. 그래서 일체중생을 다 제도 했어도 제도 받은이는 없다.
반야바라밀 관법을 하면 중생이 없다. 거기서 원력을 가지고 자비를 행한다. 그게 자비지혜원력 = 보리심이다. 왜 이렇게 하느냐 부처님의 원은 불종자를 계속 이어가게 하는 것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것은 이세상에 불종자가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보살이 수행하는 것은 성불하기 위해서
부처님이 이루신 보리심 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1 불공심 (아니불 같을공) ㅡ 같지않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보리지혜는 이세상의 무엇하고도 똑같은게 없다. 선 ㅡ 초절 ㅡ 초월해서 다 끊어졌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불공이요 초절이기 때문에 중생이냐 중생이 아니다 불공 중생하고 같지 않다 부처냐 부처도 아니다 불공 부처하고 같지 않다 물질이냐 물질도 아니다 물질하고 같지 않다 허공도 땅도 초절 불공 이게 보리이다. 내가 정득하지 않으면 안된다 같은게 하나도 없으니까 가르쳐줄 수 없다 불공이니까. 2 상응 (서로상 응할응) ㅡ 서로 통하는 것 이게 보리이다 ㅡ 불공과 상응이다.
근데 상응한다 중생으로도 상응하고, 허공으로도 국토로도 이것을 금강경에서는 ㅡ 시명 (이름이 이다) 이름이 중생이다. 이름이 범부다. 즉비는 불공이요. 시명은 상응이다.
상응으로 보면 허공도 부처님의 깨달음이다. 땅도 사람도 일체만물이 모든세간법이 5온12처18계가 다 부처님의 깨달음이다. 이건 상응의 세계
그러나 아닌것이 있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오온도 아니요 십이처도 아니요 하늘도 아니요 땅도 아니요 불공 즉비 제상이 비상이다. 모든 상이 상이 아닌것이다. 불공의 경지. 이걸 정득해야 한다. 중생이 중생이 아니다. 중생은 내 생각이다. 내 생각이 깨끗해지면 일체중생이 다 열반상이다. 법화경 ㅡ 제법종본래상자적멸상이라 일체중생천지만물이 제법인데 이게 그대로 적멸상이다 = 불공이다 하늘이냐 하늘이지 무슨 적멸이냐 땅이냐... 일체가 아닌것은 내가 정득해야한다. 내가 정득해보면 그것이 하늘과도 상응하고 사람과도 상응하고 만물과도 상응한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발심수행을하는데 일체상을 여의어서 중생심을 항복시키는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어느경전은 기본질문이 세항목으로 나오고 어느 경전은 기본질문이 두 항목으로도 나오나, 그 질문 항목에 관계없이 금강경은 항복설법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루어지는 중심설법이고, 항복은 상을 여의는데서 나온다. 상은 왜 여의어야 하는가. 부처님의 보리심의 근본 바탕이 불공과 상응에 있기 때문에 불공에 들어가려면 모든게 아닌 즉비를 통하지 않고는 안된다. 그래서 상을 여의는데 중점을 두고 법문을 설하셨다. 즉비 경지에 푹~ 들어가면 다 시명이 된다. 물이 물이 아닌데 이름이 물이다 상응이다. 상응으로 보면 전부가 부처님이다. 하늘도 땅도 사람도. 그런데 즉비로 보면, 불공으로 보면 아니다.
법문을 하는데 아니다 하는 분은 불공법문을 하는 것이다. 모두가 맞다 는 것은 상응법문을 하는 것이다. 중생의 근기에 따라서 불공법문을 할 땐 전부 아닌것이다. 갖다 들이대면 쳐 버린다. 그렇지 않고 인정할 때는 전부가 맞다. 다 맞다 안맞는게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