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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제1_종범스님_여래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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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분부터)


법회인유분의 내용

如是我聞  一時  佛  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  俱 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  乞食  於其城中  次第乞已  還至本處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부처님은 사시에 한 끼 드신다.

인도
절이 도심 가까이에 있다.
사위대성(사위국 수도)에 들어가 차례차례 걸식해 마치시고
인도지역 이 모두 다르다ㅡ 문화중심, 음식점 중심, 유흥가가 중심인 지역 등이 있다.
부처님 제자는 지역을 가려서 다녀야 한다.
부처님은 가리지 않는다.
재산의 많고 적음, 신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는다.
인도의 독특한 차별주의 ㅡ 인종 계급 피부색 에 따라
평등이 없다.
부처님은 고질적으로 정착된 차별 계급주의를 깼다.
조상, 부모, 잘사는지, 못사는지는 인정하지 않고
지금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하느냐만 중요시 ㅡ 인과
인과 밑에는 평등이다. 평등없는 인과는 없다. 기본적으로는 평등이나 차별은 자기 행동에서 나온다. 업에서 나온다. 업보만 있지 불평등은 없다.
하는 행위가 달라서 차별이 나온다.
차제걸이(차례차 차례제) ㅡ
신분과 계급은 인정하지 않고 평등과 인과만 인정
환지본처
반사흘 (먹을식 밥사)
세족 맨발로 다니심

이런 이야기가 금강경 첫번째 이야기로 나왔다 ㅡ 삶의 질. 어떤 정신세계에서 사셨는가
매일 바루를 들고 시중에 들어가고 나오고 할 때. 어떤 정신세계로. 공앙을 드시고 바루를 정리하고. 어떤 정신세계로 앉았나.
삶의 질이 깊고 넓으면 단 하루만 살아도 부족한게 없다. 삶의 질이 낮으면 억만년을 살아도 부족하다
일념즉시무량겁이요 무량원겁이즉일념이라
념 ㅡ 찰라
삶의 질에 따라 일 찰라가 무량겁이 될수도 있다.
삶의 잘에 따라 무량겁이 일찰라가 될수도 있다.
삶의 질을 높이는게 중요하다. 정신세계를 높인다.
하루만 살아도 영원히 산 것이다. 그것이 해탈이다. 마음공부이다

부처님이 걷고 공양하고 앉으신 그 마음이 반야바라밀이다. 부처님이 오시는 것도  반야바라밀이고 가시는 것도 반야바라밀이고 공양하시는 것도 반야바라밀이다.  여기에 대한 해석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3등분으로 나눈다.
1 처음~천이백오십인구 ㅡ 법회 청중
2 일시에~환지본처 ㅡ 부처님의 계행. 오고 가는게 다 계율이다.
3 반사흘~부좌이좌 ㅡ 부처님의 선정
계행 = 해탈. 계 하나 지키면 하나해탈. 둘 지키면 둘 해탈. 부처님의 한 발자욱 두 발자욱이 다 해탈이다.
갔다 돌아오신 것 ㅡ 계율
공양 정리 앉은 것 ㅡ 선정
부좌이좌 ㅡ 앉아서 뭐했을까. 이부분에 대한 설명이 많다.

금강경은 부좌이좌로 시작해서 응작여시관로 끝난다. 앉을 좌자로 시작해서 볼 관자로 끝난다.

■ 앉는다 의 의미는 무엇인가.
구마라집 번역 ㅡ 부좌이좌
보리우지 번역 ㅡ 여상부좌 결가부좌 단신이주 정념부동
평상시와 같이 자리를  펴고 가부좌를 틀어 앉아서 몸을 단정히 머물러서 (바를정생각념) 정념히 움직이지 않았다. 자세히 번역
단신이주행주좌와 돌아다니고 서고 앉고 눕고
선을 하는데 돌아다니며 하면 산란이 오기 쉽고, 서서하면 피곤함이 오기 쉽고, 누워서 선을 하면 잠이 오기 쉽다. 앉아서 하면 제일 좋다. 좌선
앉아서 무럿을 하냐
정념부동 ㅡ 정념 마음을 챙긴다.
정념 = 수의 (지킬수 생각의) 못도망가게 자기 생각을 지킨다.
정념이 되면 정정이 된다. (팔정도 정념ㅡ정정ㅡ정견) 그 다음엔 지혜가 밝다 (정견). 부처님은 정견이 항상 되기 때문에 정념 정정은 늘 있다. 부처님도 평소에 마음을 지킨다. 늘 선정에 있다. 염정혜 이다.
마음공부는 염정혜 이다.

마음이 집중을 해서 앉아있는 거기에 마음을 지킨다. 안정이 되면 불생불멸이 그대로 나타난다. 이게 지혜다.
마음이 이리가고 저리가고 따라다니면 선정이 안 이루어지고 보이지 않는다
(불생불멸 ㅡ 반야로 보는 세계)
불생불멸은 정념 정정을 통해서 가야하는 것

■불소행찬 ㅡ 마명보살 부처님을 칭찬
정념 ㅡ 성곽에 비유. 궁을 지키는게 성이다. 성 없으면 궁일수가 없다. 마음을 호흡에 집중을 하면 몸에 마름을 지키는 것이다.
안정된 선정 = 임금이 앉아 있는 용상. 성을 지켜줘야 용상이 유지가 된다. 적군이 쳐들어 오면 소용이 없다. 성을 지키는 것과 같다
념이 있어야 정정이 이루어 진다
마음챙김을 항상 해야 마음이 안정이 된다.
지혜는 성을 환하게 비춰주는 햇빛과 같다. 일광
지혜는 일광, 마름을 지키는것 (수의 = 지키는 것은 성곽과 같고, 안정이 되있는 것은 용상에 임금이 앉아 있는것과 같다.
부처님의 세계는 제일 중요한것은 멈추는 것이다. 무엇이 멈췃느냐 마음이 멈췄다.
중생일수 밖에 없는 것은 마음이 멈춰지지 않는다 마음이 한없이 한없이 앞만 보고 달아나고 있다. 가도가도 끝이 없다. 목표를 항상 구하는데 두고 있기 때문에 구해도 구해도 구하고 나면 허망하다.
부모가 가르치는 것 재권명 재물 권력 명예 부자되라, 유명한 사람 되라, 힘 쓰는 사람 되라.
구하고 보면 허망하다.
누구든지 편안하게 오래 사는 건강을 구한다.
천년을 오래 살아도 죽는 순간 허망하다.
무상 앞에 모든것이 의미가 없다.
끊임없이 구하는게 중생이다.
불생불멸을 꿈에도 모른다.

비유)
산에 올라간 사람이 토끼를 만나서 토끼를 잡으려고 열심히 쫓아다녔다. 나중에 지쳐서 토끼도 못잡고 산과 들을 다 잃어버렸다. 토끼 쫓아다니는 것을 멈추면 그 때는 산도 보이고 들도 보이고 하늘도 보이고 온 천지가 환 하게 보이는게 그게 깨달음이다.
산을 못보는 이유는 토끼 쫓다가. 토끼 쫓는 일만 멈추면 다 보인다. 본래 산에 있었기 때문에.
산에서 산을 못보는 것이 토끼 쫓는 사람이듯이
불생불멸 속에서 불생불멸을 못보는 것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중생이다.

마음이 못 따라가게 지키는 것 수의. 이것이 중요하다.

부처님을 해치려고 따라오는 앙굴리말라 이야기
멈춰라
나는 벌써 멈췄다.
왜 거짓말 하느냐 계속 도망가면서.
내 마음은 벌써 멈췄다. 너는 마음을 멈추지 못했다.

부좌이좌
몸이 오고 가고 앉고 서도
마음이 멈춰서 마음이 달아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함께 간다. 앉을 때도 몸과 마음이 함께 앉고 함께 가고 함께 앉고.
이 몸이 전부 내가 아닌것으로 이루어졌다 라는게 항상 보이니까.

엄마 나는 누가 났어?
엄마가 낳지.
그럼 아버지는 뭐했는데
엄마로 하여금 너를 낳게 했지 ㅡ 교(리)적으로 설명
커보면 알아 ㅡ 손가락을 보고 네가 직접 달을 봐야안다
그런건 묻는게 아니야. ㅡ 선 설명하지 않는다.

멈추는 일을 했을 때 아는 것이다. 설명으로 되는게 아니다. 지혜를 얻었을 때 안다.

부처님이 뭘 했을까
삶과 죽음이 없는 것을 아셔서 삶과 죽음이 없는 것을 생활 속에서 완성한 분이다.
시중안에 들어갈 때도 걸음걸음마다 삶과 죽음이 없는 상태에서 걸었고. 앉을 때도 삶과 죽음이 없는 상태에서 앉았다.
흔히
계를 잘지키면 선정이 오고 선정을 잘 닦으면 지혜가 온다.. 는 것은 처음에 깨닫는 과정이다.
부처님은 지혜속에 있다. 지혜에서 계를 실천하고 지혜에서 선정을 실천하고. 순서가 없다 깨달은 뒤에는.
닦는건 똑같이 닦는다.
산을 본 사람도 산 속에 있고 산을 못보고 토끼만 쫓아가는 사람도 산속에 있다. 산을 떠나 있는 것은 아니다.

불소행찬
정념을 하게 되면. 마음 지키는 일이 마음 속에 있으면 모든 악한 것이 내 안에 들어오지 못한다.
마음 공부하는 것 ㅡ 벽관 (벽벽 볼관)
위망이불이발법이라.
거짓되고 허망한게 내 마음 안에 못들어온다.
늘 마음를 성처럼 지키고 있으면 허망한데 현혹되지 않는다.
중생이 습관적으로 뭘 구해봐야 마지막엔 고통뿐인데 모르고 쫓아간다. 혹한다. 보는 순간 홀딱 반해서 쫓아간다. 가보면 허망해서 운다. 쫓아가고 울고.
왜냐 마음을 지키지 못해서. 뭘 가져도 갖고 난 다음엔 허망하다.

뭘 하고 싶다.
큰스님 ㅡ 하고 난 다음엔 어쩔래.
마지막에 허망함을 미리 아는 것이다.
화엄경 ㅡ 일념보관무량겁
일찰나에 무량겁의 세월을 환히 보면
지혜는 조그마한 티끌 속에서 온 우주를 다 보는게 지혜고, 찰나의 순간 속에서 영원한 시간을 다 보는게 지혜다.
무거무래영무주라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고 머무는 것도 없다.

마음을 지켜서 지혜를 항상 밝히고 있으면
간다던지 온다던지 머문다던지
이런게 전혀 없는 거다.
걸음걸음이 해탈이고 앉으나 서나 모두가 해탈이고 그런 경지를 부처님이 완성시키니까 그게 반야바라밀이다.
바라밀은 생활속에서 완성이 될 때 바라밀이다.
그런 분을 부처님이라고 한다.

우리는 부처님을 본받는 것이다.
부처님의 오고 가고 하는 계행을 본받고
부처님의 선정을 본받고 염정 (정념 정정)
부처님의 정견의 지혜 그세계로 가는게 불자다.
금강경도 그런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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