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경전 ㅡ 반야부 법화부 화엄부 정토부 열반부 유마부 6등분 큰 것 대승3부 ㅡ 반야 법화 화엄 + 정토 열반 ㅡ 대승5부 이 외의 대승불교를구체적으로 표현한 경 ㅡ 유마경 유마경을 따로 보면 대승 6부 유마경을 분리하지 않고 대승경전의 하나로 보면 대승 5부
대승불교는 대승3부 에 다 들어있다 그 중에 양으로 보면 반야부가 제일 많다 대반야경 ㅡ 현장3장법사 660년 시작 663년에 번역한 경 600권 으로 제일 많다 화엄경이 방대하다고 하나 3역본 3가지 번역을 다 합쳐도 200권밖에 안된다 반야경은 현장번역본 외 다른분 번역까지 합치면 800권이 된다.
600권 대반야경 안에 제577권째가 금강경이다. 금강반야바라밀경만 통용이 되어 주석서가 많다. 800명 정도가 금강경을 해석했다. 대승불교의 기본이 되는 반야부에서 금강경 1권만 빼서 대표적으로 공부하고 유통시켰다.
금강경은 번역본이 많다. 그 가운데서도 세 가지 번역본이 주목을 받고 있다. 402년에 구마라집 이 번역 ㅡ 진역 (후진) 509년 보류지삼장이 번역한 ㅡ 위역 (위나라) 663년에 현장삼장법사가 번역한 ㅡ 당역 3본 금강경이 중요하게 인식이 되었다.
그 가운데 제일 많이 통용된게 나집역이다. 독송하고 신앙화 되었다. (현장삼장 이전 구역, 이후 신역) 400년초 구역시대 인데 금강경에 대한 통용의 거의 전부가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구마라집 번역본을 독송 신행하고 있다.
구마라집 번역본 금강경 본문과 관계가 없지만 32분으로 나눠서 보면 독송 연구 하는데 많은 참고가 된다.
경명은 금강경 내용을 대표한다 금강경은 금강반야바라밀을 설명한 것이다. 화엄경은 대방광불화엄을 설명한 것 법화경은 묘법연화를 설명한 것
금강 ㅡ비유 바라밀 ㅡ 실천 완성 금강 ㅡ 순금 진금 ㅡ 불변성 ㅡ 어디가도 변하지 않는다 광명성 ㅡ 빛이 난다 효용성 ㅡ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이것을 따와서 반야ㅡ지혜 를 비유했다.
반야 깨달아가는 지혜, 깨달은 지혜, 해탈한 지혜, 생사에서 벗어난 지혜 1 지혜로 완성을 한다 ㅡ 뭐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일을 완성시킨다. 지혜의 완성 2 반야를 실천해가는 힘이 있다. ㅡ 반야 따로 샐활 따로가 아니라 생활에서 늘 반야를 실천하는 힘이 있다. 3 장애가 하나도 없다. ㅡ 안되는 일 억울한 일 괴로운 일이 있는 것은 반야의 눈을 못떴기 때문이다. 반야의 눈을 뜨면 혜안이다.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다 없다. 없는것 까지 없다. 설명할 수 없다.
경 ㅡ 설명하기 위한것이 아니라 가리키기 위한 것 이다. 방향이 저기다, 화살표로 가리키는 역할을 한다. '가리키는 것' 이 목적지는 아니다. 달을 가리키면 가리키는 손가락에 얽매이면 달을 못본다. 모든것을 초월하는 것이 반야다. 모든 것을 초월하는 그 자리는 뭐냐? 모른다. 그 말은 손가락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해탈의 세계를 설명하는 게 경이 아니라 가리켜 주는게 경이다. 설명 못한다. 경은 열쇠와 같다. 열쇠를 연구해 봐야 방이 아니다. 열고 들어가야 한다. 열쇠는 열고 들어가는게 의미가 있지 열쇠가 방이 아니다.
반야 ㅡ 삼세제불과 심세제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법이 다 이 경에서 나왔다. 이 경이 반야이다. 반야는 어디서 나왔느냐. 반야바라밀이 반야바라밀이 아니다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다. 반야도 가명이다. 이름이다. 이름을 통해 실체를 보는게 중요하다. 경이라고 하는 것은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어디 들어가기 위한 열쇠다, 자기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거울을 보는 순간 거울이 목적이 아니다. 내가 목적이다. 거울 보며 나를 보면 된다.
열쇠만 늘 가지고 다녀도 소용이 없다. 열고 들어가야지. 손가락만 쳐다봐도 안된다. 손가락에서 가리키는 목적물을 봐야지. 거울을 가까이 있어도 자기 모습을 보고 이상한데 있으면 고치고 자신을 수정하는게 목적이지 거울에 의미가 있는것은 아니다. 경을 보고 바로 해탈하면 된다. 경을 보는 것은 자신을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