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고수보리 제보살마하살 응여시항복기심 ㅡ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을 하시되 모든 보살 마하살은 응당히 다음과 같이 그 마음을 항복 시킬지니라.
• 수보리는 아라한 이다. • 보살마하살 보 = 보리, 살 = 사트바 = 살타 = 사람 보살 = 깨달은 사람 마하살 ㅡ 마하 = 크다, 살 = 사람 마하살 = 큰 사람 = 대인 동아시아에서는 보 를 (길도)로 쓴다. 보살 = 도인 마하살 = 대인
• 항복 = 없앤다 그마음 = 중생심, 번뇌심 번뇌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탐진치 다. 금강경에서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이라고 얘기 한다. 도인 대인들은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인중수사상을 없앨지니라.
• 보살마하살 ㅡ 도를 이룬 사람, 도를 이루려고 시작하는 사람. 도를 깨달은 사람도 보살이고 도를 깨닫고자 하는 사람 도 보살이다.
선남자선여인이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한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사람들은 응여시주 여시항복기심 이니라 묻기는 선남자선여인으로 물었는데 부처님의 설법은 보살마하살로 나온다. 이런게 경이다. 이런 가닥을 잘 차야 경의 흐름을 안다.
•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과 반야바라밀(경 제목) • 선남자선여인과 보살마하살 이런 것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반야바라밀 = 지혜로 피안에 간다. •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가장 높은 깨달음 = 보리심 • 발 =일으킨다 보리심을 일으킨다 = 구보리지심 = 보리를 구하는 마음를 일으킨다 보리 = 깨달음 • 보리심 = 보리(깨달음) 그 자체의 마음,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
□ 보리심 깨달음 그 자체인 보리심 안에는 반야심도 있고, 자비심도 있고, 억만가지 공덕심이 다 있다. 보리를 구할 때는 반야심이 등장해야한다. 반야는 부처님의 어머니이다. 반야=문수=불모 깨닫는데 중심되는 마음이 반야이고, 깨닫고 나면 보리이다. 보리는 반야심도 되고 자비심도 되고 원력심 도 되고, 공덕심도 되고, 좋은 부처님의 덕을 다 보리 라고 한다. 화엄경 78권에는 거의 한권에 걸쳐서 보리심을 설명하고 있다. 부처님 보리의 마음은 끝이 없다.
□ 무명 번뇌심 은 중생심인데 근본은 무명이다. 어리석은것, 사견, 잘못 보는 것 무명, 사견 하나가 탐심도 있고 진심, 질투심 여러가지 온갖 죄악심이 전부 무명 하나에서 다 나온다. 온갖 좋은 마음들이 전부 보리에서 다 나온다 보리심 vs 번뇌심
번뇌심의 근본은 무명이고 보리심의 근본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다. 거기서 반야 자비 원력 공덕 일체가 다 나온다 무명심에 있던 중생들이 보리로 들어가는데 누가 보리로 들어가는가 선남자 선여인 이 들어간다.
□ 선남자선여인 화엄경에서는 선재동자라고했다 1 선업성 선업을 지은 사람이 보리로 들어간다 악업이 두꺼우면 삼악도에 떨어져 고통받느라고 못 들어간다. 선업을 안지은 사람이 깨닫는 것은, 칠흙같은 어두운 밤에 태양을 볼려고 허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2 진실성 이 있어야 한다. 동자 ㅡ 진실하다
선업을 많이 지으면 ㅡ 재보가 풍부해지는데ㅡ 재보는 의보와 정보 몸이 건강하고 물질이 넉넉한 것이다. 전부 선업에서 나오는 것이다. 선업을 짓고 재물이 풍부해도 동자가 되야 한다. 진실성이 있어야 한다. 선남자 선여인은 선재 동자다. 선업도 있고 재복도 많고 진실성이 있어야 한다. 예쁘다 라고 해도 자신이 안 예쁜걸 미리 알아서 좋아하지도 않고 오히려 화를 내는 사람은 동자가 아니다. 예쁘다고 하면 정말 예쁜 줄 아는 진실성 있는 선재동자가 선남자선여인이다.
□ 신해 이 두가지 선업성과 진실성 이 있으면 신심이 깊어져서 보리가 어떤건지 알아진다. 이게 신해다. 부처님 말씀에 신심이 깊어져서, 부처님이 깨달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그 마음이 뭔지를 안다.
□ 어떻게 아느냐. 경에서 설명하기를 보리는 1 무생무멸 ㅡ 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다. 2 무명무상 ㅡ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다 3 적지원명 ㅡ 고요하면서 안다 끝이 없고 밝다 보리는 형체가 없기 때문에 고요적자이다. 부처님 마음이 무슨 모양이 있는게 아니다. 그래서 고요하다. 돌처럼 아무것도 모르는게 아니다. 안다. 알지 자를 써서 적지라 한다. 끝이 없다 둥글원자를 쓰고 밝아서 밝을 명 을 써서 적지원명이라 한다. 4 소소영영 ㅡ 밝고 밝고 신령스럽고 신령스럽다
이것이 중생이 본래 갖고 있는 보리이고 부처님이 깨달으신 보리이다.
보리는 뭐냐 말로 설명하자면 무생무멸이요 무명무상이요 적지원명이요 소소영영 이다. 그게 우리 고향 마음이다. 그게 아닌건 전부 번뇌심 가짜마음 그림자 마음이다.
사는거, 죽는거, 걱정하는거 전부 번뇌이다. 무생무멸이 아니다. 모양 그리고, 이름 짓고, 이름에 매이고, 모양에 매이는 거, 다 번뇌다. 무명무상 이다. 마음이 어디있나 찾아보면 없다. 그런데 화나지 않는다 적지. 마음은 끝이 없다 원명이다. 아주 밝고 밝고 신령스럽다 소소영영하다. 이걸 선남자 선여인은 안다. 복이 있고 선업이 있고 진실함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왜 중생들은 이렇게 헛고생을 하고, 이렇게 고통을 받으면서 괴로워할까. 중생을 건져야 되겠다는 자비심이 생긴다. 이게 발심이다. 이게 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이다.
이 무생무멸이고 무명무상 한 걸 내가 구하려고 달려드는게 아니다. 그건 다 믿고. 아~ 이런게 바로 본래 보리심인데, 중생중생이 다 가지고 있는 보리심인데, 왜 이렇게 중생들은 허구헌날 고통속에서 괴로워해야 되는가. 이러한 중생을 내가 도와야되겠다 이런 마음을 일으키는게 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다.
* 보리는 구하는게 아니라 저절로 밝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보리를 이루려면 보살행을 자꾸 닦으면 보리는 점점 더 완전하게 넓어진다. 그걸 비유하기를 보리심은 허공과 같다. 허공은 구할수 있는게 아니다. 구름만 없어지면 허공은 저절로 드러난다. 보리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되느냐. 보리는 허공과 같아서 구하고 버리고 하는게 아니다. 무생무멸 무명무상 이니까 번뇌구름, 구름과 같은 번뇌만 사라지면 보리는 저절로 드러난다. 이거것이 아인중수사상이다. 사상 번뇌구름을 없애려면 보살행을 자꾸 닦으면 된다. 그것이 금강경에서 말하는 보살행이다.
그러려면 첫째 발심을 해야된다. 중생 구제하겠다는 발심. 중생을 다 구제해도 구제했다는 생각 털끝만큼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발심, 보리심이다. 내 보리도 넓어지고 중생구제는 저절로 된다. 중생구제 다 해도 그 보리심으로 하기 때문에, 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고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는 그 마음으로 하기 때문에, 중생구제 했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
선남자선여인이 중생구제하겠다, 보살행하겠다는 발심을 하면 그 때는 선남자선여인이 아니고 보살마하살이 되는 것이다. 선남자선여인이 발심하면 바로 보살마하살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선남자선여인 중에서 발심한 보살마하살을 상대하는 법문이기 때문에 바로 보살마하살이 나오는 것이다. 이게 경전이다.
□ 문제 ㅡ 보리를 구하는 것이 보살인인데, 어째서 중생에 대한 자비를 먼저 일으키는가.
보리는 다른데서 구해 오는게 아니고 내 마음 속에 번뇌가 사라지면 드러나는 거기 때문에, 번뇌가 사라지게 하는 것은 공덕행을 지을 때 사라진다. 공덕 중에 공덕은 중생을 인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생구제로 나오는게 보살이다.
항복기심이니라. 항복기심은 사상이다. 공덕 전부 닦는게 자기 번뇌심 항복시키는 것이다. 보살은 남의 일은 조금도 없다. 다른 사람 많이 도와주는게 자기 번뇌를 없애는 수행이다. 보살이 발심하면 발심하는 순간부터 남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 내 도 닦기 위한 공덕이 보살행하는 공덕이다. 보시를 한다든지 공양을 한다든지 회향을 한다든지 동사습을 한다던지 뭘하는 바라밀행을 닦는게 내 아인중수사상을 항복시키는 노력이다. 내가 아닌 남을 도와준다는 그런게 아니다. 보살이 되면 남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체중생이 나와 같은 것이다.